2023년 3월 7일, 논문을 작성하던 중
우리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의 내용을 직접인용 하기 위해 출력하여 소장하고 있는 현행 저작권법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저작권법 제5장 영상저작물에 관한 특례 파트를 찾아서 제101조 제1항을 무심하게 눈으로 훑고 있던 그때,
어딘가 낯선 용어가 눈에 들어왔다.
현행 저작권법[시행 2022. 12. 8.] [법률 제18547호, 2021. 12. 7., 타법개정]
제101조 제1항의 초두에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넘길 수 있겠지만
저작권법 전공자는 무언가 이례적인 용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하여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을 재차 확인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가 쓰여있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저작권법을 공부한 이래에 '영상제작물'이라는 표현을 거의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곧장 책장에 있던 지도교수님의 저작권법 교과서를 펼쳐 영상저작물 특례 파트 제101조 제1항의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교수님 저서에는 동항의 내용에 '영상저작물'이라는 용어가 쓰여 있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우리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의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이라는 문언에서
‘영상제작물’이 아닌 '영상저작물'이라고 쓰여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보자면
① '영상제작물'이라는 표현이 정당하게 쓰이기 위해서는 저작권법 제2조에 용어의 정의규정이 존재하여야 한다.
사진과 같이 동조 제13호와 제14호에는 각각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자'에 대한 정의가 규정되어 있으며, 실제 법령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영상제작물'에 대한 정의규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제101조 제1항에만 돌연 사용되어 있는 용어이다.
또한 국가법령정보센터의 '법령용어검색 서비스'에서 위와 같이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자'를 검색하면 영문으로 번역된 결과 등이 나오지만
'영상제작물'을 검색하면 아무런 검색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에 기재되어 있는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는 그 정의를 확인하기 어려울뿐더러 사용의 타당성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② 제101조와 같은 영상저작물 특례 조항인 제100조에는 '영상저작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저작권법 제99조 내지 제101조는 모두 영상저작물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내용이고,
영상저작물의 특성상 여러 이해관계인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이해관계인들과 영상제작자의 권리관계를 조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규정이다.
제101조 제1항의 내용 중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과
제100조 제1항과 제3항의 내용 중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은
맥락상 동일한 의미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저작권법 제100조 제1항의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는 영상저작물의 제작, 감독, 연출, 촬영, 미술 등을 담당하는 자와 그 밖의 제작 스태프 및 실연자로서의 배우 등의 이해관계인을 말한다.
따라서 동법 제101조 제1항의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 또한 상술한 내용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로서는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물'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해석상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③ 제101조 제1항에는 '영상제작물'과 '영상저작물' 두 용어가 모두 쓰여 있다.
전술하였듯이 현행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로부터 영상제작자가 양도 받는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는 영상저작물을 복제・배포・공개상영・방송・전송 그 밖의 방법으로 이용할 권리로 하며, 이를 양도하거나 질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다. |
동항의 초두에는 '영상제작물'이, 그 이외에는 '영상저작물'이 쓰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영상제작물과 영상저작물의 법적 의미가 다르다면 해당 조항의 내용은 모순된다.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 자로부터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를 양도받고
해당 권리 또한 '영상저작물'을 이용할 권리라고 하는 것은 논리상 어긋나는 개념이다.
④ 법학계에서는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 KCI)에서 '영상제작물'과 '영상저작물'을 각각 검색한 결과,
'영상제작물'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문헌은 총 21건,
'영상저작물'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문헌은 총 193건으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법학은 주로 '사회과학'으로 주제분류가 되어있는데,
'영상제작물'을 검색하였을 때 사회과학 계열로 분류된 문헌은 단 6건
'영상저작물'을 검색하였을 때는 140건이 분류되었다.
위의 검색결과로 알 수 있듯이 법학계에서는 '영상제작물'보다 '영상저작물'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이곤 한다.
하지만 왜 우리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에만 유독 '영상제작물'이라는 표현이 쓰였는지 그 경위를 알기 어렵다.
추가로 자료조사를 해본 결과, 시판 중인 여러 저작권법 전공서적 중
허희성, 『신저작권법 축소개설 下』, 명문프리컴(2011).
박성호, 『저작권법(제2판)』, 박영사(2017).
이 두 권의 책에는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의 내용에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이 아닌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있었다.
또한 구 저작권법[시행 2003. 7. 1.][법률 제6881호, 2003. 5. 27., 일부개정] 시행 당시 발간된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법 중 개정법률“, 계간저작권 제16권 제2호 (2003년 여름호). 를 확인해 보니
106면에서 제76조 제1항(현행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과 같은 것)의 개정 내용을 기재할 때는
“영상제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이라는 표현이,
115면의 신ㆍ구조문 대비표에는 동항의 내용에 “영상저작물의 제작에 협력할 것을 약정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어 있었다.
하나의 문헌에 기재된 동일한 조문에서도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물'이 각각 혼용된 양상을 보인 것이다.
전공 서적과 계간저작권 문헌으로 말미암아
현행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에 쓰여야 하는 용어는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물’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필자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지도교수님께 질의를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단순한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으며,
"이것 또한 공부의 한 과정이니 관련 부처에 문의해 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필자는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의 오류문의/개선의견 서비스에 상술한 내용을 기재하여 제출하였다.
하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로부터 문의사항에 대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필자는 마지막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정책과의 담당 주무관님께 직접 이메일을 발송하여 질의를 하였다.
하지만 담당 주무관님께서는
"여러 저서를 살폈음에도, 왜 유독 제101조 제1항의 일부 단어만 '영상제작물'로 쓰여 있는지 이유를 알기 어려웠다"
라는 답변을 해주셨고,
"2006년 전부개정 저작권법[시행 2007. 6. 29.][법률 제8101호]의 시행으로 대안반영 폐기된
저작권법 전부개정법률안(이광철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172032) 제100조 제1항에 '영상제작물'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해당 표현이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대안(의안번호 175514)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어
'영상제작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상저작물'로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이루어진 자료 등을 찾기는 어려웠다."라고 덧붙여 주셨다.
전술하였듯이 필자는 2003. 7. 1. 시행된 구저작권법[법률 제6881호]의 개정내용을 담은 계간저작권 문헌에서도
'영상제작물'과 '영상저작물'이 혼용된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담당 주무관님께서 말씀해 주신 2006년도 의안들에도 '영상제작물'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또한 담당 주무관님께서도
"저작권법 제99조나 제100조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제101조 제1항의 용어도 전부 '영상저작물'로 사용되었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견을 밝히셨다.
현행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의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가 타 국가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 저작권법의 영어/일본어 번역본을 각각 확인해 보았다.
영문 번역본에서는 '영상저작물'로 해석되는 'Cinematographic work'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문 번역본에서는 '영상제작물'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번역되어 '映像製作物'로 쓰여있었다.
우리 저작권법의 번역본에서도 '영상저작물'과 '영상제작물'이 혼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년 동안 우리 저작권법 제101조 제1항에
'영상제작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경위도, 까닭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후사정을 살펴보았을 때 일반적인 오류일 것이라고 추측되나,
본 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단행본이나 논문, 또는 사내 서류에 쓰인 오자(誤字)가 아니다.
한 국가의 법률(法律)에 규정 경위를 알 수 없는 용어가 사용되어 있는 것은
해당 법문을 참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전반적인 법질서를 해치고 법률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염려가 든다.
오기(誤記) 혹은 잘못된 표현이라면 바로 잡아야 하고,
여타의 의미가 있는 용어 사용이었을 경우 신속하게 정정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의 미흡한 학문적 소양으로 용어의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저작권법에 정통한 학자 및 전문가 분들의 지식과 전문성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하루빨리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知的財産権法 > 著作権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커버곡은 '저작인접권' 침해인가? (0) | 2024.03.28 |
---|---|
'온라인 공연'은 저작권법상 공연일까? (4) | 2023.03.16 |